[야마히바]Romance from Paris to Rome/미완작

[야마x히바]

 

Romance from Paris to Rome

 

 

ったるいづかいにってりにります.

にそのままってしまった, あなたのます.

そしてすなわちもりにかれてめた, 直視します.

がいるから存在します.

だからがいない,

という存在消滅します.

그대의 달콤한 숨결에 취해 나는 잠이 듭니다.

그대의 무릎 위에 그대로 잠들어 버린 나는, 당신의 꿈을 꿉니다.

그리고 곧 그대의 온기에 이끌려 깨어난 나는, 현실을 직시합니다.

그대가 있기에 저 또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없는 지금,

저라는 존재 또한 소멸합니다.

 

#00

~Prologue:

 

_[Lost Everything]

 

20.

스무 살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마피아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물론 히바리 또한, 본고레 구름의 수호자로써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는지,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순순히 마피아가 되었다.

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살인에 대한 양심의 가책보다는 희열이 뒤따랐다.

 

아무도 울지 않았다.

 

21.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친구들 또한. 죽어나갔다.

이런 좆 같은 상황에 나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이 터진다. 하하……아하하.

 

히바리는, 지쳐 보인다. 눈에 띄게 말랐다.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또한 울지도 않았다. 무감각해져 갔다.

더 이상 아무도 사람의 감정에 대해 운운하지 않았다.

 

22.

 

--이제는 옆에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히바리 쿄야, 22. 본고레 vs 베스파엘라 접전에서 제 3 항구에서 항전,

쿠사카베 테츠야를 비롯한 모든 제 3항구 조직원 사망.

 

3항구에서 제 2항구로 가는 Via Stretsa 골목에서 히바리 쿄야의 박스병기와 구름의 링, 당시 입고 있었던 재킷 또한 발견되었다.

하지만. 히바리 쿄야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물론, 연락 또한 되지 않았다.

 

2항구, 야마모토 타케시, 사사가와 료헤이 담당.

 

너는 나를 향해 오다 살해당한 것일까.

너는 누구에게 살해당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 있을까.

 

24.

 

히바리 쿄야와의 연락이 닿지 않게 된 지 2.

본고레 내에서는 히바리 쿄야의 장례식을 준비했다.

사체 없는 장례식이다. 워낙 시대가 뒤숭숭한 터라 제대로 된 장례 또한 치르지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너도, 아버지도, 오랜 친구들도, 그리고 나의 인간으로써의 모습도.

 

나에게 남겨진 것은 이것 하나다.

 

너의 이름이 똑똑히 새겨진 묘비.

 

저는 믿습니다. 그가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그렇지만 또한 저는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가 과연 저희가 알던 히바리 쿄야일까, 하는.

그는 베스파엘라 접전에서 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채로 사라졌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본고레의 구름의 수호자, 히바리 쿄야의 기억을 삭제해, 자신들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명령합니다.

 

히바리 쿄야는 죽었다, 하지만

만약 그를 발견하게 된다면,

단 한 치의 의심도, 동정도 필요 없이.

 

-살해하십시오.

 

이것은 제가 사와다 츠나요시가 아닌, 본고레의 돈(보스)으로써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들은 마지막, 너에 대한 소식이었다.

 

 

#01

_[~Show me.]

 

이제 나에겐, 너를 잊기 위한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기 위한 여행이었는데, 오히려 네가 더욱 그리워져버리는 악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매일 밤 자지 못해 눈이 붉게 충혈되었고, 본고레 내에서는 나에게 휴가를 주었다.

 

휴가라.

프랑스에 가 볼까. 아니면, 이탈리아의 유명한 관광지나 가 볼까. , 일본도 좋겠다. 하하, 미치겠네. 어딜 가도 네 생각밖에는 나지 않는걸.

 

결국 프랑스에 가 보기로 했다. 베스파엘라의 본거지가 있는 곳이라, 츠나가 한 말이 맞다면 너는 분명 여기에 있을 거야.

 

-어차피 만나도, 죽여야 하겠지만.

 

*

 

겨울이라 그런지 춥긴 춥다. 프랑스는 이탈리아와는 완전히 딴판이라서 얇게 옷을 걸쳤던 야마모토는 덕분에 추위에 떨어야 했다. , 그러고 보니까 파리의 유명 관광지에 갈 때는 집시를 조심하라고 했었지. 에이-설마. 누가 마피아의 주머니 따위 털어가겠어? 오히려 소매치기 하면 이탈리아가 최악이지. 뭐 난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야마모토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변 난간에 대충 걸터앉고 어디를 가 볼까 지도를 펼쳐 들고 한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곧 불어는 역시 못 알아먹겠어, 하며 지도를 대충 쑤셔넣고 일본어로 된 파리 지도를 찾아 꺼내 들었다. 루브르 박물관. 내가 볼게 뭐 있다고. 오르세 미술관. 별로 관심 없고. 개선문? 거길 꼭 가야 하나. 몽마르뜨 언덕. 초상화 그릴 일 없으니 생략. 샹제리제 거리. 그런 곳에서 도대체 내가 뭔 뻘짓을 하려고. 그냥 파리 시내 돌아다니면서 이러저러 먹자골목에 들어가 많이 주워먹지 뭐.

 

그렇게 생각한 찰나,

누군가가 재빠르게 자신의 가방을 채갔다. 의도하지 않게 그것을 바로 감지한 야마모토는 벌떡 일어나 도둑을 잡으러 뛰쳐나갔다.

 

잠깐!!!! !!!!! 저기요 저 마피아거든요??? 아니 그게 아니라 잠깐!!! 좀 서봐 야!!!!

 

키 차이, 그리고 긴 다리길이로 인해 훨씬 유리한, 거기다가 왕년에 야구소년이었던 그는 금새 도둑을 따라잡아 어깨를 잡고 휙 돌렸다.

 

“…!!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야마모토는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깨끗한 흰 피부에 살짝 치켜 올려진 눈매. 검고 깊은 어둠을 담고 있는 눈동자. 조금 자란 듯한 긴 검은 머리칼. 설마, 설마 너는.

 

“…, 히바리?

 

상대편도 다소 놀란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가방을 야마모토의 품에 훅 안겨주고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야마모토는 약 0.1초가량 아연실색해 졌다가 도망가는 청년을 뒤쫓아 달렸다. 청년 자체가 몸이 썩 좋은 상태는 아니었는지, 아니면 야마모토가 우월적인 건지, 그는 금방 또 따라잡혀 이번엔 양 팔이 거대한 무서운 동양인 남자의 손에 붙들려 그를 올려다보게 되는 난감한 자세에 처했다. 야마모토는 청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얼굴이 긴 머리카락과 모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자, 야마모토는 낡은 모자를 던져버리고 길게 자란 앞머리를 넘겨 보았다. Match. 이 사람, 히바리 쿄야다.

 

죄송합니다, 제발 경찰에만은 넘기지 말아주세요. , 아시잖아요, 나는 그냥 그냥 그냥 저생계를 이끌어 나가기 위한 수단아니 그게 아니라…”

“…일본어 할 줄 아는 거야?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 거지. 하긴, 그러고 보니 노트르담 대성당 가까이에 경찰청 본부인가 뭔가 하는 게 떡 하니 자리잡고 있어서, 사람이 가방을 받았는데도 붙잡고 있으면 오해 살 만 하겠네.

 

? , 으응. , 왠지 모르겠지만 일본어랑 이태리어랑 영어는 할 수 있어서, 2년 전쯤인가 집시들한테 발견되었을 땐 이미 기억을 잃어서, . 나도 잘 몰라!!!!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히바리 쿄야일 확률 99.9%. 분명 이 년 전이라고 했지. 그럼 넌, 역시 히바리 쿄야다. 나의, 하나뿐인 연인. 히바리 쿄야다.

 

 

#02

_[You and Me]

 

이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히바리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히바리는 츠나가 말한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다, 는 것이었다. 물론 섣불리 판단한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히바리를 죽일 수 있을 리 없고, 츠나라면 분명 히바리를 살려줄 거니까. 곧 금방 다시 구름의 수호자로 들이겠지? 히바리만큼 본고레의 구름에 어울리는 사람도 없으니까. 츠나라면 분명. 그렇게 할 거야.

 

들어와, 히바리.

“…정말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 어째서 처음 보는 나에게 이렇게 잘 해주는 거지?

 

히바리의 너덜너덜하고 낡은 옷을 더 이상 지켜볼 수가 없어서, 가까이에 있는 양복점에 들어섰다. 히바리는 아직도 경계심을 풀지 않고 불안해 하는 게, 꼭 전의 히바리와 똑같아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좀처럼 들어오려 하지 않는 히바리의 팔목을 잡고 이끌어 가게 안으로 들어와, 내가 가지고 있는 경비로 그다지 비싸지 않을 정도로의 한계로 정장을 몇 벌 샀다. 히바리한테 캐주얼은 안 어울려, 하고 생각하며 전에 히바리가 좋아하던 취향에 맞춰 중절모까지 하나 사고, 구두도 샀다. 경비가 딸리면 본고레로 청구하면 되니까, 츠나한테 폐 끼치지 않을 정도로만 사야지. 하고 중얼거리는 나를 히바리는 여전히 경계하듯 올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히바리, 2년 사이 전혀 바뀐 게 없네. 바뀐 거라고는 머리길이 정도. 나는 옷 값을 계산하고 묵기로 했던 호텔에서 조금 이른 체크인을 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내에서 불안해하는 그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었는데, 히바리는 타인과 몸이 닿는 것을 심하게 꺼려하는 반응을 보였다. 전처럼 불쾌하다의 표정이 아닌, 조금 겁먹은 듯한 표정이라 나 또한 처음에는 적잖게 당황했다. 

 

왜 그렇게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어? 난 너를 해치지 않는다고 했잖아.

동정하는 거라면 필요 없어. 당신, 도대체 무슨 속셈이야?

말했잖아, 아는 사이였다니까.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도 너는 대답해 주지 않아.

네가 상처 받을까 봐, 라고 분명히 말했잖아.

말 해. 웬만하면 상처받지 않아. 내가 이 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는 모르잖아?

너도 네가, 나랑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잖아!!!!!

 

갑자기 소리를 지르자 놀랐는지 히바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히바리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화가-났다.

 

내가 마피아가 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해, ? 사람을 죽이는 게 좋아서? 츠나 때문에? 처음에는 순진하게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마피아가 되어서 나 때문에 죽은 아버지, 친구들의 복수? 웃기고 있네. 내가 그렇게 순진하고, 바보 같고, 아무런 감정도 없는 병신일 것 같아? 너 때문이었어. 이런 좆쓰레기 같은 곳에 발을 들여놓고선, 빠져나갈 수 없는 끝없이 피바다인 이 곳에 발을 들여놓고서는 혼자서 괴로워하는 너의 나약한 내면을 내가 친절하게 씹어 줄 것 같았어? 고통스러워하는데,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강한 척 하고, 죽이지도 못하면서 항상 죽인다, 죽인다. 죽이면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너의 그 바보스러움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어쩔 수 없이 죽이면서, 너는. 인간의 윤리와 도덕, 이치에 어긋나는 짓을 하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같잖은 살인을 합리화시키고, 너는 어째서 밤마다 혼자 외로이 무거운 양심에 대한 죄책감에 울었어야 했어?! 너는 왜 밤마다 혼자 외로이 무뎌져 가는 너의 감정에 두려워하며 울었어야 했어?! 혼자 무서워서, 혼자 너무나도 두려워서. 밤마다 밤마다 혼자 울었던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이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너는, 너는. 마피아에 어울리지 않아. 살인은, 감정을 필요로 하지 않아. 너 같은 건 인간이 되지 말았어야 했어. 너 같은 건 죽었어야 했어. 그래. 차라리 그때 그 곳에서. 고쿠요랜드에서 로쿠도 무쿠로에게, 죽었어야 했어. 나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

 

너는, 나쁜 놈이야.

아니, 어쩌면 내가.

 

 

미안해.

미안, 미안해. 히바리.

 

미안해.

 

#03

[わらない, わってしまった.]

[*변하지 않는, 변해버린.]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는데도 불구하고 나와 히바리는 한참을 내리지 않고 서 있었다. 대충 정신이 든 내가 먼저 발을 떼자, 히바리도 주춤하며 한 걸음 따라왔다. 히바리는 눈치를 보는 듯 가끔 내 얼굴을 힐끔거렸다. 기분이 많이 상해서, 지금 히바리와 마주하면 무엇을 어떻게 하게 될지 모르겠다. 나 자신도 모르게 이미 변해버린 나의 모든 것이, 변하지 않는 지금의 히바리와 충돌하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카드 키를 긋고 방 안으로 들어서 가방을 대충 침대 위에 던졌다. 문 앞에서 들어오지 않고 서 있는 히바리를 향해 간단히 들어와, 라고 짧게 명령하듯 말했고, 히바리는 한 발자국 떼려다 순간 움찔했다. 한참을 그렇게 가만히 서 있다가, 히바리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 역시 그거야?

그거라니?

나랑 자려고 이런 짓거리 한 거냐고.

 

나는 예상치 못한 히바리의 대답에 급히 히바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히바리는 고소를 흘리며 호텔 문 앞에 오른손을 짚고 고개를 기대었다.

 

그런 거라면 그냥 빨리 말을 하지 그랬어? 너도 참 병신이구나. 그래, 나랑 원나잇 하려고 옷도 사 주고, 잘 대해주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히바리.

굳이 그렇게 없는 얘기 지어내고 쇼 할 필요 없어. 페이만 해 주면 얼마든지 갖고 놀아도 돼.

히바리!!

. 나랑 자려고 한 거 아니었어? 아니면 이 대낮에 체크인을 이렇게 빨리 할 리도 없고. 죽은 줄만 알았던 친구와 만났으면 호텔 말고 다른 곳도 많을 거 아냐? 굳이 호텔로 온 것도, 일부러 친한 척 대해 준 것도, 다 그 것 때문 아니야?

 

-도대체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히바리.

 

이마에 손을 짚었다. 머리가 어지럽다. 히바리는, 이러지 않았었는데. 내가 알고 있는 히바리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집시를 안을 정도로 막장인 남색은 지금껏 두 명 밖에 못 봤는데. 잘 됐네. 안 그래도 돈이 없어서 벌어야 했거든. 고마워라.

잘 알지도 못하면 말 하지 말라고 했지.

네가 말한 그 얘기가 모두 사실이라고는 해도 내가 그 히바리 쿄야인가 뭔가 하는 네 친구가 아닐 게 뻔하잖아? 애초에 집시한테 뭘 바란 거야. . 설마 내가 네 그 친구와 닮아서, 그 친구 대신 날 옆에 두고 싶었어? 병신 같은 새끼. 그런다고 죽은 년이 살아 돌아 올 것 같아?!

친구가 아니라, 연인이었어.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 모두 잊어버렸다고 막말하지 마.

하아, 그래? 그런데 미안하네. 난 네놈의 연인과는 다르게 남자라서 말이지. 미안해. 그런데 어쩌냐? 난 네 연인이 아닌데.

넌 히바리 쿄야, 난 야마모토 타케시,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아.

그렇게 믿고 싶은 거겠지. 야마모토 타케시. 난 너를 만족시켜줄 수 없어. 왜냐하면 난,

 

난 육신도 영혼도 더러운 놈이니까.

 

히바리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기댔던 얼굴을 들어올리고, 스르르 팔을 미끄러뜨렸다. 나는 이마에 짚었던 손을 떼고, 침대 위로 손을 옮겼다. 뒤돌아서 돌아가려 하는 히바리를 불러 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넌, 변할 수 없으니까. 변하는 것은 나 뿐이니까. 너는 변하지 않으니까. 항상 하던 대로, 이미 자조적이 되어버린 웃음을 지으면서, 최대한 전에 하던 대로, 히바리를 불렀다.

 

히바리선배- 오늘은 저랑 하룻밤 같이 있기로 했잖아요?

 

주인이 부르면, 언제든지

길 잃은 새는 돌아온다.

 

#04

[れ合った]

[*맞닿았다]

 

히바리는 아직 옆에서 자고 있었다.

오랜만의 섹스에 많이 피곤했는지, 잠귀도 밝았던 히바리인데, 인기척도 못 느끼고 코오- 아기처럼 자고 있었다. 이마에 작게 버드키스를 내리고, 얼굴을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긴 속눈썹, 작은 입, 그리고 적당히 붉은 보드라운 입술. 예전처럼 하얀 피부만은 힘들었는지 여전히 하얗지만 약간 거칠어져 있었다. 올이 가늘고 검은 머리칼은 어깨길이 정도로 길어져 있었다. 이러니까 훨씬 여자 같잖아

 

솔직히 아까는 좀 놀랐었다. 갑자기 몸을 팔겠다니. 히바리는절대 이런 말 하지 않았는데. 그런 사람도 아니었는데. 분명 어떤 나쁜 외국인 아저씨가 돈을 가득 안겨주면서 친절하게 대해 호텔로 끌고 갔겠지. 그새끼 눈앞에 나타나기만 해 봐라. 회를 떠 줄 테니.

정말로, 그래서 스킨쉽도 두려울 정도로 꺼려하게 된 것 같네. 히바리많이, 힘들었나 보네. 강간당할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내가, 옆에 있어줘야 했는데.

베스파엘라 전 때도, 나와 네가 함께였어야 했는데.

 

혼자서는 너무나도 약하면서. 바보같이.

집시가 되었을 땐, 마음껏 울 수 있게 되었을까, 히바리? 언제나 언제나 넌, 혼자 쓸쓸하게 울었잖아. 남몰래, 숨어서. 이제는 그냥 와앙- 하고 울어버릴 수 있게 되었어? 어린아이처럼, 살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으니. 너는 이제 행복하니?

 

과연 네가 나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이 행운일까.

아니면,

비운일까?

 

생각은 거기에서 차단되었다. 히바리가 깨어났는지 몸을 일으켰다. 잠시 멍 때린 듯한 얼굴을 하고 방 안을 주욱 둘러보더니, 내 눈과 눈이 마주쳤다.

 

“…이번엔 너랑 잔 건가.

뭐어, 결론만 말하자면.

그럼 이제 가도 돼?

가도 될 리가 없잖아. 어제 뭔가 기억난 것 같던데, 아니야?

그건 기억나서 그런 게 아니야. 그냥 몸이 멋대로 움직인 거다.

여전히 츤데레잖아, 히바리.

틀려.

 

히바리는 침대시트를 몇 번 정리하는 듯 하더니, 혈흔과 비릿한 정사의 흔적에 눈살을 찌푸리며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쏴아- 하고 물 소리가 났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외투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예전엔 독해서 잘 피지도 않았는데, 이젠 잘도 피는군. 그러고 보니 히바리는 담배는 안 피웠었지. 술도 잘 안 마셨고. 지금도 그럴까.

그러고 보니, 히바리. 어제 그런 말을 했었다.

 

-난 네놈의 연인과는 다르게 남자라서 말이지.

 

바아-. 히바리 역시 기억 하나도 못하잖아. 바보야. 나빠. 나 정도는 기억해 줘도 좋았잖아. 그게 뭐야. 내 연인이 여자였다고 생각한 걸까나.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그게 맞긴 맞는데 말이지. 담뱃재를 몇 번 털었다. 까슬한 입술이 손끝으로부터 전해져 왔다. 그러고 보니 히바리 입술은 어떻게 그렇게 부드럽지. , 하고 투덜거리며 히바리와는 다른 내 입술을 몇 번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히바리가 목욕타월을 두르고 욕실에서 나왔다. 젖은 머리카락은 가닥가닥 뭉쳐있었고,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몸은 한마디로 색스러웠다. 휘익-하고 짧게 휘파람을 불고는 히바리 섹시해- 라고 장난스럽게 농담을 건네자, 매서운 눈매와 함께 플라스틱 비누 케이스가 이마를 가격했다. 커헉. 히바리 너무해. 닥쳐, 물어죽인다. 그것 봐. 전하고 똑같잖아. 기억을 잃었을 리 없어. 똑같잖아. 똑같아. 뭐가 달라. 아하하, 웃음이 나온다. 이번에는 컵이 날아왔다. 뭐가 좋다고 웃어, 바보. 아하하하하하하계속해서 웃음이 터져나온다. 하하하너무너무 행복했다. 지금 이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꿈만 같아서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 조차 두려웠다. 그래, 중학생일 때에는 언제나 이랬다. 즐거웠어. 행복했다.

나는 항상 너를 화나게 하면, 너는 나에게 물어죽인다, 라는 등 살벌한 말을 하지. 내가 웃으면서 미안, 미안해- 라고 사과하면, 그제서야 너는 나를 향해 웃어보인다. 그런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엔, 나보다 작은 너를 두 팔 안에 꼬옥 껴안고, 이마에 쪽, 키스해주면 너는 얼굴이 빨개진 채 귀여운 얼굴을 하고, 나를 밀어내면서 옥상으로 도망치듯 뛰어갔지. 그러면 언제나 너와 나 위에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너와 나의. 이야기.

 

너무너무 기뻐서 웃음이 나왔다. 웃음과 함께 눈물도 흘렀다. 이것은 퇴색해버린 너와 나에 대한 슬픔의 눈물일까, 다시 그 때로 돌아간 듯 한 행복에 겨운 눈물일까. 웃으면서, 울면서 나는 너에게 안긴다. 내가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너는, 갑작스럽게 우는 나를 얼떨결에 품에 안는다. 어머니처럼, 따스하게 다독여준다. 내가 너에게 안길 때, 나는 어머니의 따스함을 느낀다. 너는 나에게 안길 때,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사랑해, 사랑해, 히바리. 계속해서 너의 귓가에 속삭이면, 너는 얼굴이 붉어지곤 했었지. 너도 날 사랑한다고 해 줘. 나도 사랑해, 야마모토, 라고. 그렇게 말해 줘. 히바리. 히바리. 히바리. 히바리.

 

사랑해. 야마모토 타케시.

 

-너는 참 착한 사람이다.

 

히바리히바리이…”

그래. 사랑해울지 마…”

 

 

-너는 너무 착한 사람이다.

 

기억을 잃은 너는, 나를 위해서 거짓 사랑을 속삭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거짓 사랑에 이끌린다. 기억을 잃은 너는, 나를 위해 힘껏 나를 껴안는다. 너는 참 착한 사람이다. 기억을 잃고도 너무나 상냥한 사람이다. 너는 참 착한 사람이다. 나를 용서해준다. 이 나를, 껴안아준다. 엄마처럼. 포근하고 따스한, 오후의 햇살처럼.

 

입술과 입술이 맞닿는다. 히바리의 마른 어깨를 한껏 끌어안고, 히바리의 입술에 키스한다. 부드러운 입술이 까슬한 입술과 맞닿는다. 따스함이 차가움과 맞닿는다. 퇴색해버린 색이, 선명하고 투명한 붉은빛과 맞닿는다. 잃은 사람과, 얻고 싶지 않았던 것을 얻은 사람이 맞닿았다.

 

그 만남에 거짓은 없었다.

 

 

#05

[Winterhappiness]

 

호텔에 있어 봤자 별로 할 것도 없고 해서,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히바리는 여전히 탐탁지 않아 했지만, 그래도 나를 따라오기로 어느 정도 작정했는지 조금 뒤에서라도 강아지처럼 잘 따라왔다. 비잔티움 양식 사크레쾨르 대사원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보니, 몽마르뜨 언덕의 테르트르 광장이 보였다. 화가들이 그림을 잔뜩 그리고 있었는데, 그림을 몇 번 대충 훑어보고 히바리가 잘 따라오나, 뒤돌아봤다. 히바리가 사라져 깜짝 놀라 허둥대며 히바리, 히바리 불러봤는데, 히바리답게 어떤 화가가 그려 놓은 새와 고양이 등 동물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장면을 포착했다.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검은 양복까지 쫙 빼 입은 동양인 청년이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니 화가 또한 제법 놀랄 법도 한데, 화가인 할머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그림을 보는 히바리를 바라보고 계시니, 이건 또 뭔가 엄청난 광경이 아닌가.

 

히바리, 이거 마음에 들어? 사 줄까?

 

히바리의 곁으로 다가가 속삭이자, 히바리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나를 바라봤는데, 그 때 히바리의 얼굴은 정말 잊을 수가 없었다. 약간 상기된 볼에, 긴 앞머리에 가려졌지만 커다랗게 떠진 눈. 아아.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히바리. 히바리가 완강히 사양하자, 그럼 기념으로 초상화라도 그려줘야지. 초상화를 그리려 가만히 앉아있는데, 겨울이라 추운지 히바리가 자꾸 몸을 움직인다. 화가아저씨도 많이 당황해 해서 꽤나 난감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초상화는 꽤 마음에 들었다. 히바리는 추운데 계속 가만히 있어야 해서 뾰로통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뾰로통한 히바리의 팔을 잡아끌며 내려가는데, 아까의 대사원 에서부터 부드럽고 조용한 하프연주소리가 들렸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었던 곡조에 발걸음을 잠시 멈췄는데,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의 노래라 입가에 절로 미소가 걸쳐졌다. 히바리도 잠시 멈춰서서 감상하다, 내 팔을 툭 쳐 버리고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다. 히바리를 향해 달려가서 냅다 꼬옥 껴안아 버리고, 히바리는 예전처럼 똑같이 놔, 하고 짧게 말한다. 그럼 나는 더 꽈악 안아버려야지-. 히바리가 정말 숨막힐 때까지. 그리고 언제나처럼 웃는 거야. 행복하게.

 

밤 늦게 유럽횡단열차를 타고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갈 계획으로, 혹시 몰라 히바리의 여권을 발급받았다. 다행히 나는 히바리의 신분증도 갖고 있었고, 서류상으로 히바리는 사망신고가 되어있지 않아 얼마든지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여권을 잃어버린 것으로 하고 대사관에 가서 신나게 혼난 뒤, 여권을 재발급 받았다. 히바리는 여권에 [히바리 쿄야]라고 쓰여있는 것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재킷 안주머니에 쑤셔놓고는 대사관을 나왔다.

유럽횡단열차 침대 칸은 61실이었으나, 여러모로 사정사정 해 예약자가 1명밖에 없는 칸에 나와 히바리를 배치해 주겠다고 했다. 둘이 오붓하게는 아니더라도 시끄럽게는 가지 않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다. 그치? 하고 동의를 구하려 했으나 히바리는 이런 것 따위엔 관계 없다는 듯 여권에 찍혀 있는 자신의 사진과 자신의 초상화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히바리를 바라보며 작게 웃고는, 발급받은 티켓을 챙겨 역을 빠져 나왔다.

 

 

------------------------------

 

랄까 이거 미완작임. 앞으로 완성할 생각도 없고 하니 그냥 대충 삽시다.

그러고 보니 이거 힙총카에 연재했던것들이네요. 후후후.

지금 보니 이거 12p.네요 물론 엔터 띄어쓰기 포함 8pt기준입니다.

이거 쓸 땐 서유럽 갔다온 뒤라 나름 열심히 썼었는데 저거 결말 얌힙 아니라능. 무킵이라능.......

 

히트맨리본! 의경우는 2차창작을 어떠한 계기로 인해 그만두게 되었으니, 이 소설은 타뷸라 다음으로 미완이 된 장편이라 할 수 있겠군뇨. 후훗.

 

아니 근데 이거 웃을 일인가..............

 

슬슬 당분님 리퀘 작성하러 갑니다.(더 이상 미루면 저는 조땝니다.)

by 로즈바인 | 2009/03/14 20:06 | ㄴNovel | 트랙백

세바시엘 단문들.

 

#01 혹여-

Sebastian X Ciel


…혹여,

에게 가 존재하지 않고,

에게 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Written by. ROSEVINE


*


뜻한 봄바람이 나의 뺨을 스칠 때면, 나는 지나갔던 겨울바람의 차가운 매서움을 기억해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빠른 세월의 농간에 놀아나 눈을 떴을 때면 다시 내 앞에서 나를 베어내는 겨울이 올 것을 나는 알기에.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하얀 살갗에 떨어져 빛나게 할 때, 나는 하루의 일과가 끝날 때 즈음 핏빛 생명을 이끌고 흘러들어오는 밤을 기억해냈다. 빛이 있는 곳에 존재하기에 이미 어둠에 몸을 숨기는 작은 그림자가 되어버렸기에.


 봄날의 따스한 오후, 나른함에 졸린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의자에 몸을 기대, 따뜻하게 데워진 홍차를 입술 가까이에 가져갔다. 하루 일과도 다 끝났으니, 이제 이대로 가만히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나에게 익숙한 밤을 기다리면 되는 거다.

내가 이 몸을 숨기기에 알맞은 밤을. 기다리면.


*


 점잖은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졸고 있었던 펜텀하이브 가의 가주, 시엘은 노크소리에 눈을 떴다. 피곤한 듯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며, 창 밖에 잠깐 시선을 두고, 재차 반복해 답문을 구하는 노크소리에 들어와, 라고 짧게 답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


 자신이 모시는 작은 도련님을 대하다 보면, 악마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악마에게는 감정이 없다. 충성심도, 사랑도 그 무엇도 악마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미학만이 존재할 뿐.

 그래도 가끔은, 생각해 본다. 시엘, 아니 도련님을 가엾게 여기고 동정심의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구토증을 느끼는 것은 감정이 아닌 것일까. 다른 자들과는 영혼의 값어치가 다르다, 단지 그것만으로 나는 타인의 시선에 ‘귀찮은 일’을 스스로 자처해서 하고 있는 것인가.


시엘은, 강했다. 그 누구보다. 지금껏 자신이 취급해 왔던 영혼들도 꽤 품질이 높은 족속들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이렇게나 흥미로운 영혼은 처음이었다. 그래, 시작은 그것뿐이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단지 저 작은 것의 영혼을 위한 계약이었던 것이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저쪽도 그 계약에 응했으니, 나는 이렇게 지금 미학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누구보다도 강인하고, 누구보다도 어둠에 어울리며, 아름다운 정원 대신 시체가 널려있는 체스판 위에 서 있는 것이 어울리고, 명예로운 레드카펫 대신 자신이 만들어 놓은 숭고한 희생과 자신의 피로 물들여져 있는 지옥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어야 할 나의 소중한 영혼, 아니, 내가 모시는 도련님.


‘모쪼록 당신의 영혼이 처음과 같이.’

-내 영혼이 처음과 같이.

‘영원토록 변치 않기를.’

-내 영혼이 너의 것으로 될 때까지.

“…도련님, 오후의 티타임입니다.”


*


“당신은 나의 그림자.”

-나는 너의 그림자.


내가 명령하면, 너는 나를 따르지. 충성스러운 집사마냥. 내가 명령한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사실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있음에도.

 나는 그런 네가 싫어. 나는 그런 너에게 구토증이 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를 따르고, 나는 너를 내 말로 이용하지.

너는 나에게 필요조건이지만, 나는 너에게 충분조건이니까.


“당신과 저는 계약으로 이루어진 존재.

 그 시간은 당신에게 영원이 될 것이고, 나에게 순간의 달콤함이 되겠지요.“


나는 너를 움직인다. 너는 나의 영혼을 담보로 내 곁에 있는 것이지, 나는 너를 사용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너를 이용하겠어.

 -설령 결국 이용당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고 하더라도.


혹여 당신에게 내가,

-혹여 너에게 내가,

없었다면.

-없었다고 가정한다면.


“체크메이트야, 세바스찬.”


*


“…두렵진 않으십니까?”


체스 판을 정리하던 세바스찬이 문득 시엘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엘은 마시던 홍차를 내려놓고는 조소를 지어보였다.


“하, 이 내가? 무엇이?”


웃기지도 않는 소리라며 시엘이 입꼬리를 찢어올리며 웃어보였다. 만들어낸 웃음이다. 그에게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표정을 볼 수 있게 될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아 세바스찬은 하하, 장난스럽게 웃어보였다.


“영혼을 빼앗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면 필요 없어, 집어치워. 영혼 따위,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

“의도를 잘못 파악하셨군요, 도련님.”


세바스찬은 체스 판을 선반 위로 올려놓으며 시엘을 향해 싸늘한, 악마 특유의 붉음을 내보였다. 시엘의 푸른 눈이 그 싸늘함에 차갑게 얼어붙는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다 이루고 난 후의 허전함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어. 무엇인가를 잔뜩 잃은 경험이라면 넘쳐나듯 많겠지만.”

“그 공허함은 아무것도,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아아, 물론 인간의 허전함을 말하는 겁니다만.”


시엘의 눈이 계약의 낙인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세바스찬의 얼굴에 꽂힌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본론만 말해.


“당신은 증오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증오는 당신의 몸속에서 강함으로 전환됩니다. 모든 슬픔도, 외로움도, 고독함도, 당신은 그것들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이 그 모든 감정을 증오로 전환시켜, 당신 자신을 채찍질해 온 것 뿐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이루고 난 후에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잘도 그런 무례한 말을 퍼붓는군. 그런 쓸데없이 센티멘탈한 이야기라면 내 영혼을 가져가기 직전에 말하면 될 것이 아닌가?”

“…역시, 도련님은, 흥미롭습니다.”


당신은 강하면서도 약한, 나의 소유물.


“그렇지만 기억하세요, 당신이 품고있는 그 증오, 그 자체를 뒤흔드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당신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당신이 붕괴되는 겁니다.”


그것은 나도, 당신도 바라지 않는 일. 서로 간에 피차 좋지 못한 행위는 예방하는 것이 좋겠지요.


“나와 너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니까.”


-그렇기에. 나는 여기에 고발한다.


그렇기에, 저는 여기에 고발합니다.


-나와 너는 서로 간에 필요충분조건이므로,


당신에게 저는 꼭 필요한 존재, 나에게 당신은 흥미로워 놓치고 싶지 않은 존재.


“서로 간의 불신과 거짓은 용납하지 않는다.”

“Yes, my lord.”




*


…혹여,

에게 가 존재하지 않고,

나에게 네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여기에, 내가 서 있다.

저기에, 네가 서 있다.

언젠가는 떨어져나갈 관계이다.

지금 붙잡고 있는 계약이라는 인연의 끈은 굵고도 짧다.

붉은 그 끈이 풀려나간다.

저 멀리에서 네가 웃고 있다.


텅 빈 머릿속에

텅 빈 마음속에

네가 다가와 자리잡는다.


따뜻하다.

따뜻하니 차갑고 어둡다.

붉음이 솟아나온다.


나는 너의 그림자.

너는 나의 그림자.


여기에, 네가 서 있다.

네 안에, 내가 스며들어있다.


나는 네 안에 존재한다.

녹아들어가 오래도록 존재한다.


네가 내 존재를 잊을 때 까지,

서로는 서로를 감싸며 텅 빈 구멍을 메운다.


어느 한 쪽이 놓아버릴 때까지.

#02 感

*

 

[A Short Story]

 

SebaXCiel

 

 

 

 

입가에 가져간 찻잔이 소년의 입술 끝에 닿았다가,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진다.

소년은 창 밖으로 시선을 두다, 맑은 푸른빛 하늘을 닮은 눈이 창 밖을 향한다.

 비다. 런던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저기, 세바스찬."

 

찻잔을 티테이블 위에 탁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시엘의 입술 사이가 벌어졌다.

 

"네, 도련님."

"영혼을 빼앗긴다는 건 어떤 느낌이야?"

"영혼을 빼앗기는 느낌... 말입니까?"

 

세바스찬은 비가 오는 런던의 거리에 눈길을 두다, 자신의 작은 계약자, 시엘에게로 붉은 시선을 옮겼다.

 

"왜요, 갑자기 두려우시기라도 하신 겁니까?"

"그런 게 아니야. 그냥 궁금할 뿐이지."

"혹여 아플까, 걱정되시는 겁니까? 하긴, 아직 어린 아가니까요."

"... 아기 취급 하지 마."

 

집사의 입꼬리가 유하게 휘어진다. 자신의 어린 주인은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린 채로 찻잔에 남아있는 홍차를 들이마셨다.

찻잔이 비자 홍차를 찻잔에 따르며, 세바스찬은 입을 떼었다.

 

"아플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 ..."

"원하신다면, 지금 한 번 해 드릴까요?"

"질 나쁜 농담은 삼가해."

 

후후, 낮은 소리로 웃어보인다. 시엘은 따뜻한 홍차가 담긴 찻잔을 들어올려 손끝에서 전해지는 온기를 감지한다.

따뜻하다. 자신의 체온보다 따뜻한....

 

시엘은 자신도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걸쳤다.

 

"...좋은 향기네."

"... 그렇습니까."

 

 

런던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by 로즈바인 | 2009/03/14 19:36 | Kuroshitsuji | 트랙백

[슈타x키드]

 

Stein X Kid


不老不死

불로불사.

Written by.ROSEVINE


*


  로불사(不老不死), 절대로 늙지 않고,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신(神)이 가진 특권. 사신 또한 그럴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그가 영원히 살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긴장하지 않았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가 내 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따라서 나는 소중하게 대하지 못했다. 흘러가는 시간은 그에게는 단순히 각막 위를 스쳐지나가는 한 줄기 빛에 지나지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나 또한 시간을 단지 흘려보냈다. 소중하게 대해야 할 가치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의식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그래, 거기서부터 나의 과오(過誤)는 시작되었다.


*


 그 작은 소년이 나를 찾아왔다. 오후의 햇빛을 가득 담은 금빛 눈으로 나의 색 바랜 눈을 뚫어지듯 응시했다. 머릿속이 희뿌옇다. 사고회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녹슨 음이 사고회로를 방해하고 있었다. 잡음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지직, 치직. 치지직. 고장 난 스피커에서 잡음 섞인 케논변주곡이 들려온다. 끊임없이 들려온다. 사라지지 않는다. 소년이 작은 입을 벌려 무엇인가 말한다. 음파가 공기는 진동시키는 듯하나, 내 고막은 진동시키지 못한다. 귓가에 단지 스쳐지나간다. 무엇인가 전달하려 하는 소리의 진동이 그냥 스쳐지나간다. 멍한 정신으로 소년을 바라본다. 입 꼬리가 끌어올려진다. 웃음소리가 힘겹게 공기 중으로 흩뿌려진다. 그래, 흩뿌려졌다. 멍한 시야 속에서,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내 문다. 라이터를 켜 불을 붙이고는, 담배연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신다. 소년이 자신을 한참 찬찬히 살피다, 미간을 좁힌다. 긴 속눈썹을 가진 커다란 눈이 차분히 감겼다 뜨인다. 그리고 소년은 뒤돌아서 연구소를 나선다. 놓치면 안 돼. 멈춘 사고회로가 빠르게 회전한다. 놓치면 안 돼. 해부해야 해. 희귀종이다. 해부해야 해. 안 돼, 놓치면 안 돼.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갔다. 소년의 가는 어깨를 움켜쥐고, 돌린다. 당황으로 커다랗게 벌어진 금안이 희뿌옇게 바란 각막 위로 스쳐지나간다. 목을 타고, 한쪽으로 길게 찢겨 올라간 입 꼬리를 타고, 웃음소리가 올라온다. 의식이 희뿌옇게, 아니 사고회로가 광기로, 아니 모든 것을 광기가 지배해버린다.


*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무엇인가가 몸을 짓누르고 있어서 일어날 수 없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무겁다. 온 몸이 아팠다.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와이셔츠가 반쯤 찢겨나가 있었다. 이마에 손을 짚었다. 열이 있다. 갑자기 추워져서 주위를 살폈다. 영 시메트리하지 않은 게 여기는 내 방은 아니다. 지금 보니 내가 누워 있었던 곳은 수술대인 것 같다. 그래, 내 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슈타인박사님이었다. 저항했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보이는 수술대 위에 피가 묻어나온 메스가 백열등에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피, 누구의 것이지? 가슴팍에서 약 3cm정도 아래에 끈적끈적한 것이 묻어있었다. 손가락으로 찍어올리니, 붉게 빛나는 점성 있는 액체가 묻어나왔다. 슈타인박사님의 상태를 알 수 없어서, 허리 위로 쓰러지듯 누워 있는 박사님을 몇 번 흔들어보았다. 박사님, 불러 봐도 대답이 없다. 설마 머리 옆에 이 나사, 돌리면 태엽인형처럼 움직인다던가? 아니, 뭐 그럴 리는 없겠지만. 박사님, 박사님?


“…….키드군?”


박사님의 몸이 움찔 하더니, 고개를 들어올려 나를 응시했다. 빛이라고는 수술실 위에 켜진 전등이 다라서, 그림자가 드리워진 박사님의 얼굴은 가히 사신을 섬짓하게 만들고도 남을 정도였다.


“괜찮으세요?”

“아, 뭐. 괜찮네요. 키드군은. 피가?…….”

“아뇨, 이 정도야 뭐……. 광기에 휩쓸리신 겁니까?”

“뭐,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

“지금이라도 정신이 드셨으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몸 좀 치워주실 수 있으실까요. 일어날 수가 없는데요.”

“아. 물론.”


박사님이 몸을 일으켜주자 그때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수술대 위라는 곳은 썩 기분 좋은 곳은 아니어서, 되도록 빨리 나갈 생각이었다. 그러고보니 와이셔츠가 이 모양인데, 입을 옷도 별로 없는것이 문제였다.


“박사님. 죄송하지만 혹시 제 재킷은 보지 못하셨는지…….”

“아, 저기 찢어진 채로 있는 저것 말입니까.”

“…….”


그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땅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의 재킷이 보였다. 말 그대로 넝마가 된 상태의.


“……. 옷을 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박사님?”

“물론.”


이라고 해서 꺼내 준 옷은 전혀 시메트리하지 않은 그의 가운이었다. 여기저기 바느질 자국이 눈에 뜨임은 고사하고, 전혀 시메트리하지 않은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가 가운이 너무 큰 나머지 소매가 긴 것을 무시하고도 땅에 질질 끌려버렸다. 마치 아버지 옷을 빼앗아 입은 아들의 형상도 아니고, 불만스러운 것이 많았다. 아니, 도대체 만족스러운 것이 없었다. 나는 심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이 옷밖에 없으신 겁니까?”

“그런데……. 왜,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마음에 들 리가 없지 않습니까, 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고, 나는 묵묵히 연구소를 나섰다.


“아, 옷은 꼭 세탁해 주시길 바랍니다―”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의 옷을 찢어버린 주제에 말이 참 많다, 고 생각하며 찬 바깥공기에 옷을 추스렸다. 생각보다 따뜻해서, 눈을 감았다. 으응, 아버님의 향기랑 많이 닮아있다.


―너무 좋은 향기.



*


 키드가 그를 만난 지 정확히 3일 후 , 슈타인박사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광기에 져버린 모양이었다. 그 소식을 듣게 된 마카는 슈타인을 찾는 데에 병력을 지원하지 않는 사무전에 대해 광분했다. 소울도 마찬가지로 사무전이라는 조직에 대한 의문을 가졌고, 블랙스타는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은 채로 지켜볼 뿐이었다. 키드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방 안에 앉아있었다. 텅 빈 공간 속에, 홀로 존재했다. 키드는 사무전에 대해, 아버지에 대해 불신을 가졌다. 슈타인의 의식이 그렇게 약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을 만났을 때의 그는 확실히 위험했다. 하지만 자신이 깨어났을 때, 슈타인은 이성을 되찾았었고, 자신에게 가운을 빌려주며 ‘세탁까지 해서 돌려 달라’며 상당히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키드의 침대 한 구석에는 깨끗하게 세탁된 가운이 하얗게 자리 잡았다. 주름 없이 곱게 다려진 새하얀 가운이 옷걸이에 걸려 놓여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약한 남자가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약한 남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상관없었다. 적어도 키드에게는.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그를 찾아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 뿐이었다.


*


“부탁해, 같이 가 줘.”


 소울과 마카를 앞에 두고, 키드는 허리를 숙였다. 눈을 감은 채로, 너희들이 없으면 안 돼. 그러니까 제발 같이 가 줘. 그렇게 부탁했다. 슈타인은 메두사와 함께 있다고 했다. 메두사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없으면 안 된다. 그들이 보좌해 줘야만, 슈타인에게 접근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한다면 거절할 수도 없고- 어차피 우리도 갈 생각이었으니까. 그치, 소울?”

“어? 아, 뭐.”

“..다행이다, 정말 고마워...”


키드는 그제야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럼, 보좌를 부탁할게.”


*


“어라, 꼬맹이들이 왔네.”


 메두사가 기둥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며 장난쳤다. 그들에게는 조소를 흘리며,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소울은 무기로 변한 채 마카의 손에 들려 있었고, 키드와 곁눈질한 후 소울을 고쳐 쥐고 메두사를 향해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키드는 슈타인에게로 달렸다. 슈타인은 반 정신이 멍한 상태로, 무방비하게 방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슈타인박사님.”


키드가 차분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슈타인의 눈은 빛을 잃어 흐린 회색빛이었다. 키드의 금안이 흔들렸다. 키드는 슈타인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닿을 수 없었다. 두려웠다. 슈타인이 손을 뻗어 나사를 돌렸다. 끼릭-끼릭 돌아가는 녹슬음이 고막을 진동시켰다. 마카 측도 상태는 나빴다. 빨리 하지 않으면, 이쪽이 당한다.


“박사님.”


 용기를 내어 슈타인의 뺨에 손을 가져다댔다. 차갑다. 인간의 피부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차가웠다. 그 때, 슈타인의 손이 키드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가 이대로 파장을 쏘면, 자신은 죽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눈이 감긴다. 목이 압박된다. 강한 악력에 호흡이 되질 않아, 머리가 터질 듯 아파온다. 그런데, 그 손이 떨려온다. 덜덜 떨려온다. 안경 속으로 비치는 눈이, 동요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동요하고 있다. 필사적으로 그의 머리를 품속에 껴안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울린다. 상대방의 고막을 진동시킨다. 생명의 박동이, 역동적인 고동이 상대방의 사고회로를 움직인다.


*


이-상하다. 파장을 쏠 수가 없ㅡ다.

무언-가에 방해-받-고있다.

무언-가가 나를 방ㅡ해ㅡㅡ한다.

머릿-속에 노이즈-가 끊이질-않ㅡ는다.

노이즈, 노이즈, 노이즈. 뭐라고 지껄이는거야.

그 시끄러운 소음제조기 닫아.

지금 손에 무언가가 쥐어져 있어.

작은 생명체야. 맥박이 뛰고 있어.

어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만져봤어.

뭐지, 뭐어어-지.

그래. 방해하는건 이놈이야.

손에 힘을 조금만, 아ㅡ주 조ㅡ금만 쥐게 되면,

이게 죽을거야. 이게 없어질거야.

응, 그리고 나는 이걸 가질거야.

조ㅡ금만. 그래, 아주 조-금만, 힘을....힘을. 주면.



손에 힘을 주어 내리눌렀다. 꾸욱, 꾸욱.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망설임이 모두 사라졌다. 지직대는 소음이 사라져간다. 됐다, 이걸로 끝이다. 모-든게 끝이다. 기쁨에 웃음이 걸쳐진다. 광기어린 웃음소리가 비실비실 터져나온다. 손에 쥐어진 무엇인가가 희미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두근, 두근. 일정한 규칙으로 천천히 잦아드는 울림. 희미하게, 천천히 잦아드는 노이즈 속에, 들려오는 차분한 온기.


-박사..님....


익숙한, 그리웠던 그 무언가. 그 목소리. 목소리? 노이즈? 목소리? 노이즈? 목소리?


노이즈목소리노이즈목소리노이즈목소리노이즈목소리목소리목소리목소리.


-목소리.


“... 키드. 군.”


*


“박사님... 옷... 세탁 했어요. 깨끗하죠? 근데... 너무 컸어요... 너무 커서, 저, 불편했어요.”


희미하게 고동치는 심장. 떨리는 목소리, 너의.


“...그래요. 다음에는 더 작은 걸 준비해야겠네요.”


미소짓는 너의 입. 입가. 입꼬리. 휘어지는.


“근데... 미안해요...전 못 입겠네요...”


천천히, 소년의 손이 슈타인의 볼을 쓰다듬었다. 안경을 힘없이 벗겨내 옆으로 낙하시켰다. 파열음과 함께 안경알이 산산조각나 떨어졌다. 키드의 손이 슈타인의 눈가를 배회했다.


“다행이야.. 박사님 눈이 다시 맑아져서. 나, 이런 당신 눈이 좋았는데.”


 목에는 파랗고 검게 손자국이 남은 채로, 등은 메두사에 의해 뚫려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 인간과 같은 붉고 뜨거운 피가. 신의 안에도 흐르고 있었다. 떨리는 손끝이, 얼굴 위를 배회하다 떨어져내린다. 안경 파편 위로 떨어져 내린 손이 혹여 아플까, 손을 조심스레 잡아 자신의 손으로 포개어 주고, 슈타인은 키드를 안아든다.


“마카, 소울. 키드는 살아있어요, 신이니까, 죽지 않을 겁니다. 빨리 데려가세요. 여기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사실은, 살아있어야만 해요.



*



-누가, 신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했는가.



*


 끝나기 전에, 두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의자를 뒤로 젖혀 앉는 것은 온 몸이 피곤해서 그러니 그 정도 예의 없는 행동은 거슬리더라도 참기를 바란다. 어차피 곧 이 글은, 나의 생애는 끝을 맺는다.


하나, 


나는 금단을 뛰어넘었다.

연구해서는 허용 받지 못할, 하지만 연구했기에 알아낸 신의 비밀.


-신은, 죽는다.


둘,


나에게는 과오가 있다.

금단을 뛰어넘기 위해 저지를 과오들.


1.신이 불로불사(不老不死)하다고 믿은 것.

2.그래서 그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못한 것.

3.또한,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



나의 과오로 이루어진 책은 이처럼 4p로 되어있었다.


이 책에 끝으로 에필로그를 써 넣는다면,


그 에필로그에는 이렇게 짧게 적어놓겠다.




HE CAN ALSO DEAD.



--------------

후기는 이해를 돕기 위해


키드 죽었음. 슈타인 죽었음.



,....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랄까 정말 사죄드려요,

마리 선생님의 역할을 슈타인으로 바꾸고 싶었을 뿐입니다 정말이예요.

끄엥 어쨌든 이 소설은 저의 빛과소금 유하님께 바칩니다ㅠㅠㅠㅠ//



090314土 이글루스 업뎃

by 로즈바인 | 2009/03/14 19:33 | 트랙백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